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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의 어느 추운 날, 목우람은 빠르게 걸어갔다. 그는 오늘도 공방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목우람은 뮤즈의 생일을 앞두고, 완벽한 바이올린을 만들어내기 위해 철야 작업을 반복했다. 공방에서 작업한 후, 좋은 부품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학교 밖으로 나가 물건을 사 오기도 했다. 이제 3학년을 앞둔 목우람은 잠도 줄여가며 한 작업에 피곤한 상태로도 즐거운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때, 인도 한쪽 구석에서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무거운 짐을 잔뜩 든 노인은, 꽤 위태로운 모습으로 휘청휘청 걸어갔다. 0반의 공식 호구이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목우람이 재빠르게 다가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짐을 들어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그래요. 안 그래도 힘이 들던 참이었구먼. 저기까지만 옮겨 줘요. 사람이 오기로 해서.”

 

 받아 든 짐은 깡마른 노인이 들고 있었다기엔 너무나도 무거웠으나 목우람은 플레이어의 강인한 근력으로 가뿐히 짐을 들어 옮겼다. 가는 내내 노인은 흐뭇한 눈빛으로 기특한 학생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한순간 수상한 빛으로 물들었지만, 목우람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에 내려놔 줘요. 학생은 은광고 출신인가? 정말 착한 학생이야. 고마워요.”

 “네, 은광고에 재학 중입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 학생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뜬금없는 노인의 말에 목우람이 멈칫했다. 좋아하는 사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신 존경하는 뮤즈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의뭉스럽게 웃더니 수상한 제안을 했다. 노인의 제안은 이러했다. 그에게는 진족에게서 받은 신비한 콩 나무 씨앗이 있다. 이 씨앗을 심으면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으니, 착한 마음을 가진 목우람에게 씨앗을 주고 싶다. 마음만으로는 그냥 주고 싶으나, 진족과의 약속 때문에 반드시 대가를 받고 줘야 한다. 그러니 가진 돈을 전부 준다면 씨앗과 바꿔주겠다. 그 말을 들은 목우람은 선뜻 주머니의 돈을 전부 털어 씨앗과 바꿨―,

 

 “잠깐. 바꿨다고?”

 

 손짓으로 목우람의 말을 멈춘 맹효돈이 말했다. 그렇다. 목우람은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콩 나무 씨앗과 전 재산을 교환하고, 그 무용담을 0반에 돌아와 말하는 중이었다. 어쩐지 말을 이어갈수록 0반 학생들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듣다 못한 맹효돈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목우람의 말을 멈춰버렸다.

 

 “아니, 그거 사기 아니냐?”

 “효돈아….”

 

 이번에도 엄청난 호구력을 갱신해버린 목우람에게 팩트 폭력을 날리는 맹효돈을 김유리가 막았다. 그러나 김유리도 목우람을 두둔해주지는 못했다. 김유리가 듣기에도 노인은 너무나도 사기꾼 같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노인은 길 가다 만난 이였기 때문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도 찾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이 씨앗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목우람의 계좌는 앞으로 누가 보관하면 좋을지 토의하던 학생들을 뒤로하고, 목우람은 창틀에 놓인 화분으로 걸어가 씨앗을 심었다.

 

 “그분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씨앗을 심으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렇게 사기를 당했으면서도 사람을 믿는 목우람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멍하니 보고 있던 0반 학생들은 눈을 껌뻑였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목우람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쥐고 있는 화분이. 퍼벙-! 그러더니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반에 연기가 가득 찼다. 뒤에서 별말 없이 0반의 모습을 지켜보던 황지호가, 그제야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한 진족이 작은 장난을 친 모양이다. 위험하지는 않을 테니 모두 안심하도록.”

 

 연기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목우람은, 머리카락이 조금 부스스해진 것을 제외하고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목우람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연기가 흩어졌을 때, 그의 표정을 본 모두가 놀랐다. 목우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신이라도 만난 표정으로, 한 마디 중얼거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미래로 다녀온 것 같습니다….”

 화분이 빛났을 때는 마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잠깐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더니, 어느 순간 엄청나게 고요해졌습니다. 저는 혹시 갑작스러운 이계의 등장인가 싶어 디바이스로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제 옷차림이 이상했습니다. 저는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눈앞의 풍경을 살펴보았는데, 그곳은 한 극장이었습니다. 사방에 관객들이 앉아있었고, 저도 관객 중 하나인 듯했습니다. 그러자 곧 무대로 한 사람이 걸어왔습니다. 네, 바로 레나였습니다! 아름다운 백금의 바이올린을 꺼내든 레나는, 지금보다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였습니다. 아마 졸업 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공연하고 있던 것이겠지요. 레나의 재능으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레나의 연주는 정말 완벽했습니다. 아니, 물론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더욱더 완벽해졌다는 뜻이었습니다. 레나가 연주하는 곡은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었습니다. 관현악단의 반주와 함께 시작된 레나의 독주는 마치 푸른 하늘 위를 날아오르는 새처럼 선명하게 들렸-아, 연주 설명은 그만해도 괜찮다고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완벽한 연주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대략 두세 시간 정도 연주를 들었지만, 체감 시간으로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브라바를 날리며 일어나 박수 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쏟아지는 전율과 영감에 빠져있었을 때, 처음과 같은 기분이 느껴지더니 다시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노인분의 말이 맞았습니다. 미래의 레나가 연주하는 협주곡이라니! 이 씨앗은 정말 제게 완벽한 경험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정말이지 기회가 된다면 한 번이라도 더- 어, 이 화분 다시 빛나고 있지 않나요? 혹시- 앗!

 제가 혹시 또 사라졌었나요? 이번에도 저는 미래를 다녀온 것 같습니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마음을 좀 가라앉혀야 해서…. 방금 간 미래는 그 전보다 더 후의 시기였습니다. 장소는 극장이나 무대가 아닌, 아마도 제 공방으로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오던 거로 보아 아마 밤이었을 겁니다. 레나는 창문을 뒤로한 채 서 있었습니다. 한 손에 든 바이올린이 달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은 마치 음악의 신이 제 방에 강림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미래의 제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간 것 같았습니다. 레나가 갑자기 어려진 저를 보고 무척이나 당황했거든요. 저는 먼저 뮤즈를 놀라게 한 일을 사과하고, 제가 어떠한 연유로 그곳에 간 건지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레나는 상황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나요? 그리고는 제가 돌아가기 전에 연주해 주겠다며 활을 들어 현을 내리그었습니다. 연주곡은 쇼팽의 녹턴 20번 C단조였지요. 야상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밤중의 고요함을 활로 그려내는 것 같은 그 연주는- 아, 죄송합니다. 짧고도 긴 연주 끝에 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레나는 무슨 일로 제 공방에 와 있었냐고요? 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들 대석이의 입은 왜 막으시는 겁니까? 지호는 아직도 웃고 있군요. 계속해서 여러분을 놀라게 해드려 죄송…. 한 번 더 남았다고요?

 또다시-황지호의 말에 의하면 마지막으로-반이 연기로 가득 찼다가 돌아왔다. 이번에도 목우람이 미래로 가 권레나의 연주를 듣고 왔을 거라 예상한 0반 학생들은, 감동하여 무아지경에 빠진 목우람이 시작할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그런데 목우람의 반응은 이전의 두 번과는 완전히 달랐다. 다시 나타난 목우람의 얼굴은 완전히 붉어져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고,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목우람은 떨리는 눈으로 교실을 둘러보다, 권레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러나 그 질문을 던질 눈치 없는 이는 남아 있지 않았다. 맹효돈과 송대석은 김유리와 민그린이 각각 끌고 가 자리에 앉혔다. 그것을 시작으로 누가 신호라도 준 듯이 무리 지어 있던 아이들은 흩어져 자리로 갔다. 황지호는 웃고 싶은 듯 입을 씰룩거리다 아무 말도 없이 자리로 돌아갔고, 부반장은 미묘한 눈빛으로 권레나와 목우람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권레나는 아직도 주저앉아있는 목우람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목우람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었다. 조례 종이 울릴 때까지도 그는 그대로였다. 자리로 돌아간 권레나는 그가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태도가 달라졌는지 고민하다가, 문득 그의 손이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반지 같은? 권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쌀쌀한 날씨에도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비빅바비빔밥

​목우람과 콩나무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우람레나 동화 합작

*본 합작은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작품을 기반하고 있습니다.

​*본 합작은 1920X1080 크롬 브라우저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PC열람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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